글리코 | ‘우리는 아직도 엄마를 모른다', 틈새를 파고든 중국 포키 광고

장수 브랜드의 가장 무서운 적은 경쟁사가 아니라, 소비자의 '고정관념'입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지 30년이 된 글리코는 과자 '포키(Pocky)'를 다시 봐달라면서 어머니의 날에 광고를 진행했어요.

글리코 | ‘우리는 아직도 엄마를 모른다', 틈새를 파고든 중국 포키 광고
©格力高中国

중국에서 5월 둘째 주 일요일은 어머니의 날입니다. 초코 스틱 과자 ‘포키(Pocky)’를 판매하는 글리코(glico)는 올해 상하이 쉬자후이 지하철역 환승 통로에 어머니의 날 광고를 걸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포키 광고인데, 정작 포키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거든요.

광고판을 채운 건 제품 이미지가 아닌 어머니의 얼굴과 이런 문구입니다.

글리코(格力高)가 중국 어머니의 날에 진행한 지하철역 광고. 어머니의 몰랐던 면모를 알려주는 광고를 진행했다.
©格力高中国©格力高中国
"우리 엄마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집안일을 하시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까칠한 재벌 남주' 나오는 웹소설을 듣고 계셨다." — @Nicole

"엄마는 덕질하는 여자였다. 젊었을 때 직접 콘서트 티켓팅도 하러 다녔다고 한다." — @L'oiseau

"엄마가 이렇게나 패셔너블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재단사에게 옷 디자인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고." — @Yoyo

이 광고 캠페인의 이름은 ‘엄마를 다시 알다(重新认识妈妈)’입니다. 글리코는 온라인에서 ‘엄마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알려달라고 말하며 실제 사연을 모집했고, 그중 일부를 광고판에 실었어요.

겉만 보면 전형적인 어머니의 날 감성 캠페인처럼 보이지만, 여기엔 더 정교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이건 오래된 브랜드 자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기획이에요. 비밀은 이어지는 전광판에서 풀립니다.

글리코(格力高)가 중국 어머니의 날에 진행한 지하철역 광고. 신제품 '오홍오흑(五红五黑) 포키(Pocky)'를 간접적으로 홍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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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가 철이 없다고 말하던 엄마도, 사실은 어른이 되는 게 아쉬웠을지 몰라.

엄마를 다시 알다
(重新认识妈妈),
포키를 다시 알다
(重新认识百奇).

마지막 문장이 글리코 광고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입니다. 포키는 오랜 시간 축적된 ‘어릴 적 먹던 달콤한 간식’이라는 이미지 대신, 부모님 세대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간식’도 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왜 하필 ‘건강한 포키’일까?

캠페인의 배경에는 포키가 안고 있던 브랜드 과제가 있습니다. 포키는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대표적인 수입 과자이지만 달콤한 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해요. 건강식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는 요즘은 약점이 있는 셈이죠.

글리코(格力高)의 신제품 '오홍오흑(五红五黑) 포키(Pocky)'의 제품 사진. 몸에 건강한 간식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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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글리코가 출시한 신제품이 ‘오홍오흑(五红五黑) 포키’입니다. 다섯 가지 붉은 식재료(구기자, 대추, 팥 등)와 다섯 가지 검은 식재료(흑미, 검은콩, 흑참깨 등)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어요. 중국 식문화에서는 음식으로 몸을 보신한다는 개념이 생활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소비자는 이름만으로 제품 속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죠.

엄마를 재발견하게 만들어, 포키를 재발견하게 하다

제품은 만드는 것만큼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캠페인이 영리한 이유는 ‘엄마의 재발견’이라는 감정적 경험을 브랜드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부모님을 오래 봐왔기에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익숙했던 존재가 전혀 다르게 보이죠.

글리코는 이 심리를 활용했습니다. 엄마에게도 우리가 몰랐던 모습이 있듯, 포키 역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이미지 너머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날’을 계기로 화두를 던졌죠.

브랜드가 말하는 대신, 소비자가 말하게 하다

캠페인의 또 다른 강점은 브랜드가 직접 감동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글리코는 캠페인에 앞서 “엄마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한 적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실제 소비자들의 사연이 광고의 핵심 콘텐츠가 됐어요. 광고에 나오는 사연의 주인공 계정은 ‘이건 브랜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경험’이라는 신뢰를 부여합니다.

요즘 소비자는 ‘감동을 강요하는 광고’에 쉽게 피로를 느낍니다. 글리코는 한 발 물러나는 동시에 소비자를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세워 이 함정을 피했어요.

포키의 형태를 활용한 카피

신제품 ‘오홍오흑 포키’의 카피도 인상적입니다. 글리코는 포키 스틱 두 개를 수학 기호처럼 활용해 메시지를 표현했어요.

글리코(格力高)의 신제품 '오홍오흑(五红五黑) 포키(Pocky)'의 광고 카피. 과자를 활용해서 제품의 효능을 대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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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 < 마음 (甜度 < 心意)
먹고 싶다 = 먹을 수 있다 (想吃 = 能吃)
맛 > 부담 (美味 > 负担)

‘오홍오흑 포키’는 저GI 식품에 당 함량이 50% 적은데다 식이섬유가 풍부합니다. 하지만 홍보할 때는 숫자를 내세우는 대신 제품이 가진 효능을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보여줬어요. 예를 들어 '먹고 싶다 = 먹을 수 있다'라는 카피는 건강을 위해 과자를 참았던 부모 세대에게 '이제는 안심하고 즐겨도 된다'는 허락의 메시지를 던지죠.

이런 방식이 훨씬 힘이 센 이유는 소비자가 상황을 먼저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포키’라는 정보보다 ‘엄마에게 부담 없이 건넬 수 있는 포키’라는 이미지가 더 빠르게 각인되니까요.

익숙함이라는 감옥에서 브랜드를 구출하는 법

글리코는 1995년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인 이후, 30년 가까운 시간을 소비자의 곁에서 보냈습니다. 긴 세월은 신뢰라는 강력한 자산을 남겼지만, 동시에 포키를 '어릴 적 먹던,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과자'라는 익숙함의 감옥에 가두기도 했죠. 장수 브랜드가 직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경쟁사가 아니라, 소비자 마음속에 고착화된 '고정관념'일 거예요.

글리코는 엄마가 과거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듯이, 포키 또한 ‘언제든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브랜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소비자가 브랜드의 어떤 면모를 ‘재발견’해주길 기다리고 계신가요?